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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성당 덧글 0 | 조회 3,621 | 2012-05-24 00:00:00
최대관 (최대관)  


시골성당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최 대 관




우리 가족은 모두 성당에 다닌다. 나는 모태신앙이고 아내는 나와 결혼한 다음해에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우리 아들은 유아세례를 받았다. 작년 말 우리 집으로 시집온 며늘아기는 시집오기 전 세례를 받았다. 명색이 그 이름도 찬란한 가톨릭 집안이다.


내가 전주 시내에서 살다가 이곳 시골로 이사 온 지 어언 11년째가 되었으니 상관성당과의 인연도 그 정도 되었다. 도시성당과 시골성당의 차이가 있으면 얼마나 있으랴만 이곳 시골성당은 마당이 넓어 좋다. 정원에는 철따라 꽃이 피고 마당 가운데에는 수십 년 된 벚나무 한 그루가 떡 버티고 서 있다. 외형상으로는 여느 성당과 별 차이가 없지만 시골성당은 유독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다. 젊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들어와 살다가도 큰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쯤이면 자녀들의 상급학교 진학 때문에 시내로 나가버리니 시골에는 아주 젊은 층과 나이 많으신 노인들로 양극화 되었다.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상관성당은 지금부터 54년 전에 나무와 붉은 벽돌로 지어진 구 성당과 7년 전에 새로 지은 새 성전 등 두 개의 성전이 있다. 성당의 살림살이가 넉넉하여 성전이 두 개가 된 게 아니라 그만한 사정이 있다. 54년 전에 건립되었다는 ‘구 성당’은 6‧25전쟁이 끝나고 이 나라에 구호물자가 한창 들어오던 시절, 외국의 원조로 지어졌다. 그리하여 일명 밀가루성당으로도 불린다. 당시 주 건축자재가 나무와 벽돌이다 보니 지금의 철근콘크리트만은 못했으리라. 그리하여 바람이 부는 날이면 창문이 덜컹거리고, 비가 오는 날이면 비가 새어 전기가 나가며 마이크가 꺼져 중간에 미사가 끊기곤 한다. 여러 차례 보수를 해도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러한 불편 때문에 모든 신자들이 구 성전을 보수하기보다는 새로운 성전을 짓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으나 문제는 돈이었다. 하느님을 모시는 성전을 짓는다 해도 하느님께서 일원짜리 한 장 도와주지 않는다. 모든 것을 우리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


일명 ‘비상대책위원회’가 조직되고 일복 많은 나는 하필이면 제일 머리가 아픈 ‘재정부장’을 맡았다. 옛날에는 일복이라고 하면 ‘먹을 복’이 함께 따라 왔다는데 나에게는 뒤쪽복은 빠지고 앞쪽복만 받는다. 그런데 그때에는 웬일인지 모든 신자들의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전국의 성당목록을 놓고 지역별로 나누어 일정표를 짜고 최소한 1,2주 전에 방문할 성당의 신부님께 연락하여 우리 성당의 사정을 설명 드리고 어차피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이니 좀 팔게 해달라고 말씀드리면 열에 일곱, 여덟은 퇴짜였다. 어렵게 승낙을 얻어낸 성당으로 토요일 오후에 3,4명씩 조를 지어 서울, 부산, 대구, 광주, 강릉 심지어 제주도까지 전국을 누비곤 했다. 전남 영광에서 사온 굴비며, 충남 강경에서 사온 젓갈, 북한산 민물꽃게장 등 가짓수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다. 굴비를 팔러 다녀오면 온 몸에서는 굴비냄새가 났고, 젓갈을 팔러 갔다 오면 몸에서는 젓갈냄새가 났다. 그래도 그때는 힘든 줄 모르고 뿌듯했었다. 다녀오면 다른 팀들의 판매대금까지 합하여 결산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곤 하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몫으로는 이빨쑤시개 하나 팔아보지 않은 내가 무려 4년 동안이나 이 짓을 하였다. 정말 피눈물 나는 고생이었지만 서광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나는 또 하나를 깨달았다.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면 가히 못할 일이 없으며 처음 시작 할 때는 엄두도 못 냈는데 이 일을 해내다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이었다.


4년 동안의 각고 끝에 지금의 새로운 성전을 우리들의 손으로 마련하였다. 주교님을 모시고 축성식을 갖던 날, 우리는 모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 덕으로 지금은 깨끗하고 편안한 성전에서 미사를 드리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에 조금 더 고생해서라도 더 멋진 성전을 짓지 못한 것이 후회로 남는다.


그런데 요즘 구 성전이 또 말썽이다. 성당 옆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우리 성당이 제일 높은 건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파트에 가려 외부에서 오시는 분들은 성당을 쉽게 찾지 못한다. 높은 종탑도 있고 붉은 벽돌로 지어졌기에 시골을 여행하면서 흔히 볼 수 있는 언덕 위의 예배당 같다. 보기에도 멋스럽고 보존 가치도 있어 교육관 정도로 사용하려고 그냥 놓아두었으나 지난겨울 바닥의 온수 파이프가 터져서 보수를 했는데 봄철이 되니 마룻바닥이 주저앉아 어렵게 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콘크리트바닥으로 보강하였다. 이제는 아무런 일도 없으려니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벽체에서 물이 새고 바닥에는 전기장판을 추가로 깔아야 한단다. 대충 소요금액을 뽑아보니 일천만원을 훨씬 웃돈다. 이번에는 무슨 얼굴로 신자들에게 도움을 청한단 말인가?


집에 가도 돈 걱정, 회사에 와도 돈 걱정, 마음 편하고자 성당에 가도 돈 걱정이니 죽어야 잊을까 생전에는 돈 걱정으로 편할 날이 없어 보인다. 거기에다 아내는 남의 욕을 얻어먹으면서까지 왜 앞장서서 일하느냐고 하니 이거야말로 ‘진퇴양난’이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물론 내가 없어도 상관성당은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를 보건대 모든 사람들이 다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아주 적은 극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역사는 창조된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인류가 70억 명 정도라지만 과연 몇 사람에 의해 역사가 기록되는지! 역사의 수레바퀴를 우리 모두가 밀고 있던가, 역사의 방향타를 우리 모두가 잡고 있던가? 나는 똑똑한 방관자가 아니라 조금 부족하지만 더불어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욕먹는 것이 두렵다면 어찌 세상사는 일은 두렵지 않겠는가. 세상사는 일이 두렵다면 어찌 세상을 살아 갈 수 있을까. 너무나 얄팍한 계산으로 세상을 살지 말고 때로는 담대한 마음으로 살아갈 일이다.


하느님, 당신의 성전을 관리, 보수하는 일도 이처럼 어렵습니다. 그래서 요즘 꽤나 힘드네요. 도와주소서. 아멘!


(2012.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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