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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제주도 올레길 덧글 0 | 조회 3,588 | 2012-05-27 00:00:00
박일천 (박일천)  


아름다운 제주도 올레길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박일천




구름 위를 새처럼 날아간다. 강산이 세 번 바뀌고 나서야 남편과 단둘이 다시 가는 제주도다. 그 옛날 신혼여행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갔는데 지금은 친구 같은 편안한 남편과 가는 구혼여행이라고나 할까? 언제부터인가 막연히 걷고 싶었던 올레 길. 유채꽃이 노랗게 핀 길을 걸어 보려고 봄날에 제주도를 찾은 것이다.


제주도에 도착하여 렌터카도 먼저 한림공원에 들렀다. 겨울을 지나고도 종려나무들이 푸르게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이곳이 아열대기후라는 것이 실감 났다. 하얀 벚꽃나무 아래 노랗게 핀 유채꽃이 마치 하얀 너울을 쓰고 노랑드레스를 입은 봄날의 신부처럼 눈부셨다. 벚꽃이 바람에 흩날려 떨어지니 그대로 꽃눈으로 쌓였다. 하얀 꽃 이파리를 머리에 이고 늦은 시각이라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봄 처녀가 되어 동영상을 찍었다. 사위어 가는 석양빛을 안고 야자수 사이로 겅중겅중 거니는 타조는 마치 이국의 풍경 같았다.


예약해둔 서귀포 KAL호텔에 들어서니 신혼여행 때 묵은 호텔이라 왠지 정겨웠다. 오랜 세월 기쁨과 슬픔을 같이 한 동반자와 다정한 연인처럼 손잡고 다시 이곳에 오니 감회가 새로웠다. 새벽에 일어나 바다를 끼고 잘 가꾸어진 정원을 산책하고 마라도를 가려고 서둘러 길을 떠났다.


마라도는 제주도에서 11km 떨어진 우리나라 최남단의 섬이다. 한 시간가량 걸으면 한 바퀴 돌 수 있는 자그마한 섬이다.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초원을 걷다 보니 마라분교장이 나왔다. 조그만 건물, 작은 운동장이 있는 분교엔 2명의 학생이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방송에 나온 유명한 마라도의 짜장면 맛을 보려고, 무한도전의 유재석이 앉았다는 테이블에서 짜장면을 먹으니 괜스레 더 맛이 있었다. 배를 타러 선착장에 가는 길가의 목책을 보니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이었다. 생각을 더듬어보니 20년쯤 전에 사진을 보고 마라도에서 본 제주도를 유화로 그린 적이 있었다. 목책이 이어져 있고 바다 저 멀리 성산 일출봉이 아스라이 보이는 광경이, 예전에 그린 그림 속의 모습과 비슷하여 풍경화 속으로 내가 들어 간듯하였다.


푸른 물결 넘실대는 태평양에 마라도를 남겨두고 올레 10코스의 명물인 용머리 길로 들어섰다. 제주 올레 길은 해안을 따라 19코스까지 있다. 코스마다 2∼7시간 정도 걸리는데, 우리는 차를 타고 가다가 멋진 장소에 내려서 올레 길을 걸으며 그곳의 풍경을 즐겼다. 용머리 길은 썰물 때만 갈 수 있는 해안 길이므로 물때를 잘 맞춰야 한다. 정오쯤 들어서니 마침 썰물 때라 드러난 바닷가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용머리 길은 오랜 세월 파도가 조각한 기암괴석과 여러 번 화산활동에 의한 형형색색의 절벽으로 이루어져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끄는 마력을 지닌 멋진 길이다.


다음으로 8코스인 주상절리가 있는 곳으로 갔다. 높다란 육각기둥 수백 개가 늘어서 있는 모습은 어느 신전을 보는 듯 장관을 연출했다. 마치 사람이 정으로 깎아 만든 듯 섬세하였다. 주상절리를 지나 물비늘이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걸었다. 해풍에 유채꽃과 야생화들이 하늘하늘 춤췄다.


산 그림자가 서서히 대지에 옷자락을 내려놓을 즈음 삼굼부리로 향했다. 삼굼부리는 광활하게 펼쳐진 평원 한가운데 지름이 600m 정도 움푹 파인 분화구를 가진 기생화산이다. 언덕길을 산책하듯 가다 보니 금방 분화구에 다다랐다. 이곳은 같은 분화구 안에서도 침엽수와 활엽수가 공존하는 보기 드문 식물의 보고라고 한다. 선선한 저녁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내려오던 중


“어! 저길 봐.”


하는 남편의 외침에 앞을 보니 커다란 노루 한 마리가 껑충껑충 초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자세히 보려고 달려갔으나 노루는 이미 언덕 너머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방송에서만 보던 야생노루를 직접 볼 줄이야…….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허브동산에 들러 가지각색의 앙증맞은 꽃을 본 뒤 허브 찜질방에 들어가 향기로운 냄새를 맡으며 여행의 피로를 풀었다. 그곳에 들어온 붙임성 좋은 중년부부가 우도이야기를 했다. 축제기간이라 소라도 실컷 먹고 그곳의 환상적인 경치에 반해 온종일 있다가 막 배를 타고 왔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우리도 내일 우도를 가보기로 하였다.


다음 날 아침엔 표선 해비치 해변을 따라 올레 3∼4코스를 걸었다. 해안을 따라 보랏빛을 띤 무꽃이 순진한 아기처럼 해맑게 웃음을 지었다. 끝없이 이어진 무꽃이 아침 햇살에 보라, 하양, 남색 등 무지개처럼 영롱하게 빛났다. 차를 타고 2코스인 섭지코지로 들어섰다. 오르막길을 오르자 저만치 쪽빛 바다 위로 촛대모양의 바위가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으로 다가왔다. 이곳은 드라마 ‘올인’을 촬영하여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푸른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언덕 위에 세워진 하얀 성당을 보니 수녀복을 입은 주인공이 떠올랐다.


배를 타고 올레 1코스인 우도에 다다르니 소라축제 때문인지 사람들이 줄을 지어 내렸다. 우도 사람들이 운영하는 천막식당에서 소라구이와 몸국, 소라 죽으로 싸고도 맛깔스럽게 점심을 먹었다. 밀려오는 손님으로 종종걸음 치면서도 친절히 대하는 그네들에게서 섬사람들의 푸근한 인심을 맛보았다. 입담 좋은 관광기사의 설명을 들으며 버스를 타고 바닷길을 돌았다. 길가엔 여기저기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오히려 제주도보다 우도의 유채 꽃밭이 더 아름다웠다. 더불어 무꽃과 청보리가 지천으로 있으니 보라와 노랑, 초록 물감으로 들판에 수채화를 그려 놓은 듯하였다. 버스에서 내려 바닷가 절벽 아래 동안경굴을 구경하였다. 때마침 썰물 때라 동굴 안 깊숙이까지 들어가 볼 수 있어 바닷속을 드나든다고 생각하니 신비로웠다. 홍조단괴 해변은 산호가 부서져 생긴 모래알로 바다색이 에메랄드빛으로 투명하게 반짝거렸다. 바다빛깔에 반해 맨발로 모래사장을 거닐었다.


마지막 날은 벚꽃이 만개한 오름공원에 올라 제주시를 바라보았다. 시야가 맑아서 멀리 한라산 정상이 선명하게 보였다. 오래전 한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백록담에 올랐던 옛일이 떠올라 한라산이 반가웠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오르니 제주도가 그림처럼 멀어져갔다. 올레 길을 날마다 서너 시간씩 걷느라 힘들기도 했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한가로웠다. 화사한 봄날에 노란 유채꽃과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둘이서 도란도란 정답게 걸어간 아름다운 올레 길이었다.


(2012.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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