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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밤 덧글 0 | 조회 3,555 | 2012-05-28 00:00:00
김금례 (김금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김금례




봄은 어김없이 대지를 흔들며 꽃을 피우고 있다. 설렘과 환희가 서성이고 있을 때, 며느리의 밝은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들려왔다.


“어머니! 조금 있으면 인후동에 도착 합니다.”


엊저녁 늦게 집에 왔던 막내아들과 여행을 반대했던 남편도 환하게 웃으면서 큰아들 차에 올랐다. 큰손녀에게 귓속말로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빙그레 웃으며 가족이 약속이라도 한 듯 손사래를 쳤다. 손자들의 재롱에 푹 빠져 있을 때 며느리가 말했다.


“아버지, 오늘은 묻지도 말고, 알려고 하지도 마시고, 저희들을 따라주세요.”


멀리서 마이산이 보이는 것을 보니 진안이었다. 창밖을 보니 역시 자연은 아름다웠다. 겨우내 웅크려졌던 마음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인생의 긴 터널을 지냈던 지난날의 삶을 굽이굽이 돌고 돌아온 자녀들의 모습이 그리움으로 밀려온다.


가족은 동체의식(洞體意識)으로 똘똘 뭉쳐있는 공동체라고 한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데는 내실과 주체성이 있어야 한다. 윤리도덕이 살아 있어야하고, 가족 간에 대화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 가장의 권위가 있어야하고, 칭찬과 사랑, 물질보다는 정신적인 유대가 강해야 한다. 정처 없이 지나온 세월은 나를 이순(耳順)을 넘어 불유거(不踰路)로 만들어 오늘 며느리의 손길을 받으며 가고 있다. 길섶의 이팝나무와 아카시꽃향기가 바람 타고 들어와 나를 취하게 할 때 용담댐 상류 운암마을 정상에 올랐다. 망향비, 고향 그리운 집, 용바위 비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손자와 함께 읽었다. 한때 70여 가구가 오순도순 살았던 수몰민들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풋풋한 냄새와 이기낀 수목들의 향기가 내 코를 파고들 때 며느리는 맛있는 음식을 선택하라고 한다. 오리, 참붕어 찜 등등……. 남편은 웃으면서 ‘참붕어 찜’을 골랐다.



참붕어 찜으로 점심을 들면서 며느리는 말했다.


“오늘은 최고의 음식, 최고의 기쁨을 선물하려고 합니다. 하느님도 저희들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햇빛을 쨍하게 비추어 축복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먼저 답사하여 부모님을 즐겁게 해주려고 한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며느리가 고마웠다. 경치 좋고 공기 좋은 자연을 만끽하면서 초원으로 둘러싸인 ‘큰 바위 펜션’에 도착했다. 자연이 준 소담한 풍경화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주인아주머니가 반갑게 인사를 할 때 큰딸네 가족이 들어왔다. 황토 흙집으로 지어진 가마터에서 여장을 풀었다. 남자들은 백운동에서 흐르는 시냇가에서 물고기를 잡고, 딸과 며느리는 주방에서 분주하다. 손자손녀들은 막내 삼촌이 선물한 모형자동차와 비행기를 잔디밭에서 갖고 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기뻐한다. 부모의 행복은 뭐니 뭐니 해도 형제가 사랑하는 모습을 보는 일이다. 우리 부부는 그네에 걸터앉았다. 패기 왕성했던 지난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얼굴엔 주름살만 가득한 남편을 보고 있노라니 짠한 생각이 들었다. 시원한 바람이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녹음진 자연의 나무숲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귀를 어루만져 주었다.


애지중지 키웠던 4남매와 사위, 며느리, 손자, 손녀들과 함께 밤을 지새운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다.


해가 서산에 걸리려 할 때 숯불에서 남자들은 삼겹살을 구워내고, 여자들은 맛이 있다면서 배를 채우기에 바빴다. 세상풍경이 어둠에 묻히자 가마터 안에 가족이 모두 모였다. 며느리가 아름답게 그림이 그려진 ‘꿈의 날개를 달고 출판기념회’ 플래카드를 벽에 붙였다. 그리고 며느리가 사회를 보면서 행사를 진행했다.



제1부 개회사


- 여는 노래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 피아노연주)


- 사진 영상보기 (부모님 일생- 결혼-현재 )


- 케이크 자르기


- 음료수 축배 러브 샷


- 아버님 말씀


- 작품낭송(가족의 의미)


- 어머님 은혜 노래합창


- 어머님 답사


- 낳아주셔서 감사, 바르게 키워주셔서 감사, 건강하게 오래사시라며, 큰절을 했다. 코끝이 찡하며 눈물까지 대동한 감동이었다.



제2부 가족의 밤


- 가족 퀴즈 대회


- 풍선 터트리기


- 다 같이 노래 부르기


- 마침기도



밤의 정적을 깨며 손녀 정현이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피아노로 연주할 때는 모두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불렀다. 가족퀴즈대회는 상품이 있어 손자 손녀들의 열정에 박장대소를 했다. 4남매를 키워온 삶을 영상으로 꾸며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란 자막이 흘렀다. 마치 한 편의 다큐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프로그림을 짜느라 밤잠을 설치며 고생했던 며느리가 내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며느리가 한없이 고마웠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얼마나 감동을 받은 적이 있는가! 오늘 나는 큰 감동에 젖어 울고 말았다.


요즘 자식들은 툭하면 이혼을 하고, 며느리는 ‘시’자가 든 시금치조차 안 먹는다는데 출판비도 마련하고, 출판기념회까지 해준 며느리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밤이다. 떠들썩했던 자녀들은 새록새록 잠이 들었다. 밤은 자꾸만 흘러간다. 나는 이 아름다운 밤의 감동을 이기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꽃날의 등불이 큰바위 전경들을 거울처럼 밝히고 있다. 어둠이 얕아지는 게 아쉽다. 날이 밝아오기 때문이다. ‘밤하늘에는 별이 있어 아름답고, 땅에는 꽃이 피어 아름다우며, 사람에겐 사랑이 있어 아름답다’고 했다. 바람 사이로 가버린 시간의 그림자들이 나를 행복하게 하고 있다.


로마의 위대한 철학자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가 ‘오늘이 네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 여기고 살아라.’ 했던 그 말이 오늘따라 내 가슴을 파고든다. 아들과 딸, 사위와 며느리, 손자손녀들이 고맙다. 두 팔을 크게 벌려 힘껏 안아주고 싶다. 지나온 삶의 무게들을 자연에 묻고 산과 물, 바람이 있는 아담한 황토 흙집에서 가족들의 사랑을 먹으며 다짐했다. 이제부터는 더 알토란같은 글을 써야겠다고.


(2012.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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