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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너 그리고 우리 덧글 0 | 조회 3,369 | 2012-05-29 00:00:00
최대관 (최대관)  


나, 너 그리고 우리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최 대 관




나는 나이고 너는 너지만 나와 너 둘이 만나면 우리가 된다. 그런데 우리가 되기 위해서는 이질이 아니라 동질이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되기 위한 첫째 조건은 나는 나 자신을 알아야 하고 너는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둘째 조건은 나도 너를 알아야 하고 너도 역시 나를 알아야 한다. 그러면 나는 나에 관해 얼마만큼 정확하게 알고 있는가?


나의 키와 몸무게는 얼마인가? 피부색깔은 가무잡잡하고, 머리칼은 핑크 파마를 했으며, 눈썹은 길가에 아무렇게나 나있는 마른 풀잎처럼 제멋대로 나있고, 얼굴모습은 처음 보는 사람은 정이 천리나 떨어질 만큼 고약하게 생겼다. 최종학력은 대학졸업이며, 과거에 어느 회사를 다녔고, 지금은 그동안 마음은 있었지만 실행하지 못했던 글을 써보려고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에 다니고 있다. 취미는 골프와 독서, 여행이고 술을 즐기는 애주가다. 종교는 가톨릭이지만 날라리 신자다. 성격은 쾌활한 편인 것 같지만 때로는 싸이코 기질이 있다. 이게 내가 나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다. 이렇게 말한다면 나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나를 그의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을까. 그렇다고 더 이상 무엇을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굳이 덧붙인다면 가족 관계다. 아내는 누구이고, 자식은 몇을 두었으며, 그들은 무슨 일을 하고 있고 어떤 있느냐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은 으레 아내와 아들 자랑으로 듣는 사람들을 짜증나게 한다. 이것이 나에 대한 소개의 전부다. 이러한 것들은 나의 겉모습에 관한 개괄적인 설명일 뿐 나의 생각, 나의 철학, 나의 심성, 나의 이상 등을 어찌 알 수 있단 말인가.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것들은 말이나 글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전달하지 못한다.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이유는 내 자신도 나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연 나는 누구일까! 역사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번민했지만 그 많은 사람들 중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한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그것은 1492년 10월 May Flower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을 발견한 것만큼이나 어려웠던 일일 게다. 이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는 나를 어리석다고 말한다면, 내가 당신을 보지 않고도 당신을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설명해 보시라.


상대방을 알려면 함께 여행을 해보라 했다. 함께 여행하며 생활하다 보면 그 사람의 성격, 취미, 생각, 철학 등을 알게 될 뿐더러 전에 미처 보지 못했던 다른 모습도 보게 된다. 그러기에 함께 생활하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상대방을 정확하게 알 수 있으리라.


친구라면 아마 ‘죽마고우’가 친구 중 가장 가까운 친구일 게다. 이순이 지난 지금도 그때 그 친구들이 그립다. 그렇지만 이 친구들이 아무리 친하고 서로를 잘 안다 해도 결혼하여 30년이 넘도록 한 지붕 밑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한 이불속에서 살아온 아내만큼 나에 관하여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으리라. 꿈과 취향과 이상이 같을 것 같아 결혼하여 함께 산 부부도 살다보면 완전히 극과 극인 경우가 많다. 요즘의 높은 이혼율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는 결혼 전에 ‘함께 여행을 하지 않은 까닭이다’라고 생각한다. 아내는 나와 함께 인생이란 여행을 30여년이 넘도록 했으니, 이 세상에서 나보다 나에 대해 더 많이, 더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바로 내 아내일 게다. 이순이 넘어서야 이 사실을 깨달은 나는 아내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해도 속도 없는 사람처럼 ‘헤헤’하고 웃어버린다. 물론 순간적으로 자존심은 상하지만 그 짧은 순간만 지나면 만사가 태평해지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에는 내가 모두 옳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내 생각도 많이 변한듯하다. 왜냐하면 내가 내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데 어찌 나의 생각이 옳다고만 고집할 수 있겠는가? 이 고집이 결국은 자신을 보호하는 울타리가 된다.


사람은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의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자신의 본질을 가두고 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할지라도 각자의 울타리가 있다. 나는 나의 울타리, 너는 너의 울타리를 갖고 있다. 어떤 이는 이 울타리를 콘크리트 벽으로 높게 쌓고 그것도 미덥지 않아 그 위에 철조망을 두르고 유리조각을 꽂아 놓기도 한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혐오감을 느끼게 한다. 또 어떤 이는 자신만의 경계선을 표시하기 위하여 연록색의 낮은 철망을 치고 그 곁으로는 예쁜 꽃들을 심어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잠시 잡아둔다. 또 드물게는 아예 울타리를 걷어치운 이들도 있다. 무엇 때문에 세상이 그리도 두려워 교도소 담장처럼, 철옹성처럼, 또는 2차 세계대전 때의 일본인들의들 지하벙커처럼 ‘난공불락‘의 요새를 만들어 놓았을까.


이제 우리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철책울타리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쳐놓은 울타리마저 걷어내야 한다. 내가 나의 울타리만 부수면 된다. 남들이 그들의 울타리를 치우지 않았다고 불평하지 말고 나의 울타리만 걷어내면 세상의 울타리는 모두 없어진다. 그래야만이 나와 너 둘이서 합하여 진정한 ‘우리’가 된다.


경상도와 전라도가 하나가 되고, 영남과 호남이 하나가 되고, 보수와 진보가 하나가 되고, 여당과 야당이 하나가 되고, 동과 서가 하나가 되고, 유럽과 아시아가 하나가 되고, 종교가 하나가 되고, 노와 사가 하나가 되고, 남편과 아내와 자식이 하나가 되고, 이웃과 이웃이 하나가 된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해 일하는 정치인이라면 어찌 여당과 야당이 따로 있을 수 있으며,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필요하단 말인가. 그것도 부족하여 편 가르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보수와 진보 사이에 ‘중도’라는 것을 또 하나 만들었다. 국민은 여당이나 야당도, 보수나 중도, 진보 어디에도 관심이 없다. 모두가 하나 되어 어우러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밥도 혼자 먹기보다는 여럿이 함께 먹어야 더 맛이 있고, 춤도 함께 추어야 더욱 흥이 난다.


모든 것들이 Global화 되고 하나가 되는 세상에 우리만 나누고 찢어져 편을 가르고 있다. 이제는 알을 깨뜨리고 새로이 태어나는 병아리처럼 우리 안의 울타리를 부수면 좋겠다. 그리하여 나와 네가 합하여 진정한 우리가 되어야겠다.


(2012. 5. 28.)


2012. 05. 28(음 4월 8일). 아내의 병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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