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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쓰기와 촛불/김규원 덧글 0 | 조회 646 | 2017-02-13 06:51:56
김규원  




받아쓰기와 촛불

김규원 | kgw202@daum.net


초등학교에 들어가 한글을 배우는 과정에 ‘받아쓰기’ 공부를 한다. 선생님이 불러주는 문장을 글씨로 바로 적는 연습이다. 받아쓰기 시험을 보고 나면 선생님은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적절한지 살펴보고 ‘잘했어요.’ 도장을 꽉 찍어준다. 아이는 집에 가서 엄마 아빠에게 보여주며 동그란 ‘잘했어요’ 도장을 자랑한다.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윗사람이 불러주는 메시지를 제대로 잘 알아들어야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음을 배운다. 옛날에 군대에 가면 ‘시키는 대로 하고, 주는 대로 먹고, 때리는 대로 맞아라.’라고 했다. 그 중에 하나라도 거부하거나, 제 맘대로 하려다가는 군대생활이 괴로웠다. 이 나라의 관리와 공무원들도 그 원칙을 잘 지켜야 순탄하게 정년퇴직을 할 수 있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당선되자마자 서명한 행정명령이 ‘이슬람 7개국 국적자 비자발급과 난민 입국을 90-120일간 금지’하는 일이었다. 테러 위험이 있는 사람들의 입국을 막겠다는 조치였다. 이 명령이 떨어지자 미국 국민들이 바로 저항하며 일어섰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이에 반대하고 나섰지만, 트럼프는 되레 큰소리를 치며 콧방귀로 답했다.

그러나 국무부 관리들이 이에 반대하는 서명을 했고, 샐리 에이츠 법무장관 대행도 트럼프에 맞서다가 잘렸다. 그리고 주 법무장관들이 트럼프의 행정명령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발이 묶였던 사람들이 미국에 들어갈 수 있었다.

미전역에서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대학총장들, 유명 연예인들, 애플 등 유명 기업들도 함께 의견서를 내며 대들었다. 그들은 이 명령으로 손해를 보거나 불이익을 당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기득권층의 유명인이었고 기업이었다.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미국의 정신이었다.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고, 외국 기업의 물품에 고관세를 물려 미국 기업을 보호하겠다는 정책, 문을 걸어 잠그고 그들끼리만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트럼프에 정면으로 대든 사람들을 보며 필자는 우리의 현실이 비교되었다. 우리나라의 관리와 공무원, 기업인들은 왜 그들과 달라야 하는가? 이게 미국과 우리나라의 차이일까?

60년대 초 박정희의 군사쿠데타 이후, 힘 있는 편에 붙어야 무사하게 살 수 있다는 ‘진리’를 뼈저리게 느낀 세대는 그 진리를 후대에 물려주었다. 그렇게 대물림으로 내려온 우리의 직장에는 ‘NO'라는 대답이 없다. 윗사람이 더러운 손을 내밀면 되레 두 손으로 맞잡아 가담하고 비밀을 공유하는 것을 도리이고 의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일을 고발하거나 세상에 흘리는 자는 조직에서 단호히 내치는 것은 물론 배신자로 낙인찍어 버린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4년 동안 드러나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조직문화가 뿌리깊이 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월호 사건과 정윤회 사건에서 충분히 노출될 수 있었음에도 모두가 입을 다물고 받아쓰기에 열중하는 바람에 어물어물 지나갈 수 있었다.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반대하여 정면으로 대드는 미국의 관료와 사회를 보며 부럽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에겐 위대한 촛불이 있었다. 힘에 눌리고 치이던 이들의 가슴에 깊이 감추어있던 뜨거운 불길이 서로의 가슴과 가슴으로 넘쳐 나와 광장의 촛불로 밝혀졌다. 거대한 촛불의 힘이 넘실거릴 때 무서워 슬금슬금 탄핵에 동참하며 참회하는 듯 연기하던 호위무사들이 다시 태도를 바꾸어 촛불에 대들고 있다.

그들은 촛불이 북한의 사주를 받았다고 모함하고 그 의미를 폄하하며, 그들의 영원한 우상 박근혜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그 속내는 탄핵을 애타게 기다리며 참고 있는 촛불민심이 이제는 수그러들었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듯하다. 그리고 최근에 다시 보수에 대한 지지성향이 늘어가는 TK민심을 믿고 싶어 한다.

촛불에 타죽지 않으려고 껍질을 벗어던지던 그들이 ‘바른정당’이니 ‘자유한국당’이니 어룽어룽 애매한 이름의 옷으로 갈아입고 국민을 우롱하려 하지만, 이번에는 속지 않는다. 이제 곧 다시 거대한 촛불이 횃불로 다시 타오를 것이다. 그러면 얼룩무늬로 갈아입은 자들이 내밀었던 머리를 감추고 다시 조용해 질 것이다.

뜨거운 국민의 마음인 촛불의 마음을 풀어줄 단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받아쓰기 수첩인 고 김영한 수석과 안종범의 수첩에 적인 내용들이었다. 받아쓰기는 고분고분하지만, 그 속에 칼날도 들어있었음을 그들이 이젠 알았을까? 아마 헌법재판소도 두 사람의 수첩 받아쓰기에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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